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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Food Korea

살기 위해 먹어, 먹기 위해 살아?

September 25, 2014

장시내 한국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 활동가

2014.09.26 16:17:00

 

[민들레] 닭과 치킨 사이

 

내 손으로 닭을 잡다 

 

풀 한 포기 흔들리지 않는 무더운 초복 날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임이 있어 찾아간 유정란 양계 농장. 농부님이 후끈한 닭장에 들어가 튼튼한 닭 네 마리를 꺼내오셨다. 어찌나 실한지 다리 두께가 어린아이 손목만 했다. 양계를 하는 곳이라서 닭을 도축할 수 있는 도구라고는 흔히 쓰는 부엌칼밖에 없었다. 그걸 이용해 옛날처럼 맨손으로 잡아야만 했다. 농부님이 먼저 시범으로 두 마리를 순식간에 잡았다. 매일같이 닭을 보는 농부님도 이 일은 '참 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쳐다보기도 힘들다며 포기했고, 대신 동료의 남자친구가 세 번째 닭을 잡았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였다. "그냥 하지 말지…. 하지 마." 농부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정말 꼭 해보고 싶었어요."  

 

"에휴……. 할 수 있겠어?"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던 농부님이 순서를 다시 한 번 알려줬고,  나는 용기 내어 닭을 건네받았다. 닭을 거꾸로 들어서 안정시킨 뒤에 한쪽 손으로 목을 뒤로 꺾어 잡으니 눈을 끔뻑거리며 체념한 듯 가만히 있었다. 목털을 젖히고 마음속으로 짧은 기도를 한 뒤에, 조심스레 하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 과감하게 칼을 대어 동맥을 끊었다. 진하디 진한 피가 흘러나왔다. 피가 모두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푸드덕거리는 그 힘이 어찌나 센지 온 힘을 다해 아주 꽉 잡고 있어야 했다. 무릇 모든 생명들처럼 결코 쉽게 죽지 않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실제로는 1분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닭의 날개는 움직이지 않았고, 느리게 끔뻑이던 눈은 아예 감겼다. 닭의 근육이 죽 풀리며 느슨해지는 것이 손으로 느껴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눈을 질끈 감고 닭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다리에 온통 피가 튀어 있었다. 

 

털이 잘 뽑히도록 닭을 따뜻한 물에 담가뒀다 꺼냈다. 털이 어찌나 많은지 거의 30분 동안 손질을 해야 했는데, 배 쪽에 있는 털을 뽑으니 "꽥" 소리가 났다. 남아 있던 공기가 빠지면서 나는 소리였는데, 아직 닭이 살아 있는 줄 알고 너무 놀랐다. 그 후로 나는 신문지로 닭의 머리 부분을 덮고 털을 뽑아야 했다. 목을 잘라내고 배를 갈라서 모래주머니, 간, 심장, 콩팥 등 내장을 다 꺼냈다. 그제야 닭이 내가 알던 그 닭고기로 보였다. 

 

▲ '1인 1닭' 광고. ⓒ배달의민족

'1인 1닭'이라는 광고카피가 나올 만큼 길거리엔 하나 건너 하나씩 치킨 집과 고기 집이 진을 치고 있고, 나 또한 계속 육식을 해왔지만 이제야 난생처음 닭을 잡아보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닭 잡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먹는 모든 것이 준비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열장에 깔끔하게 포장되어 놓인 고기를 너무나도 편하게, 지폐 몇 장으로 '소비'한다. 누군가 도축을 대신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과정이 생략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해버렸다. 생명이 주는 음식에 대한 감사함은 사라지고 아무 노력 없이 남의 살코기를 노리는 인간의 욕심만 남은 결과, 많은 동물이 수입산 유전자조작(GMO) 곡물을 먹고, 부리와 꼬리가 잘리면서 좁은 공간에서 살만 찌우며 사육된다. 그 자체의 생명이 아닌 '인간을 위한 음식'으로 키워질 뿐이다.

  

청년들의 슬로푸드 운동  

 

대안학교를 다닐 때 인턴십 인연으로 만난 슬로푸드 운동은 맛있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회운동이다. 슬로푸드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시간이 오래 걸려 느리게 만든 음식, 예를 들면 "김치나 된장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불량 고춧가루에,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는 배추로 만든 김치라면, 그것은 슬로푸드라고 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햄버거도 슬로푸드가 될 수 있다. 우리밀로 만든 빵과 항생제 없이 좋은 사료로 키운 소고기 패티, 제철 양상추와 토마토로 만든, 그리고 그것들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키웠는지 알고 먹을 수 있는 햄버거라면 말이다. 

 

슬로푸드는 이탈리아의 한 소도시에서 새로 들어선 '맥도날드'를 반대하며 시작된 운동이다. 패스트푸드를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서가 아니다. 맥도날드는 현대의 음식 문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대자본이 점점 많은 음식과 종자를 독점하면서 소농들이 감소하고 생명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다. 슬로푸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음식(로컬푸드) 소비운동, 플랜테이션으로 황폐화된 아프리카에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텃밭을 만드는 프로젝트, 사라질 위기에 처한 종자 들을 발굴해 농부들이 계속 경작할 수 있게 지원하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세상이 미친 듯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많은 것을 잃고 있기 때문에, 이 운동도 그만큼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20대 식습관만 봐도 학교를 벗어난 대안학교 아이들의 먹을거리는 생각보다 대안적이지 않으며, 자취를 하는 친구들의 먹을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빈약하다. 하지만 가족, 학교, 친구들의 식생활을 변화시키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당장 눈앞에 저렴하면서도 빠르고, 입맛에 당기며, 그걸 먹는다고 당장 죽지는 않을 만큼 무해한 음식이 있는데, 그보다 비싼 음식을 사먹으며 사치를 부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들에게 건강을 위해 당장 생협에 가입하라거나 유기농만 골라 사먹으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돌을 씹어도 소화할 수 있는' 20대 친구들에게 몸을 생각해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는 이야기는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진짜 슬로푸드라는 것은 내 건강만을 위해 좋은 음식을 찾는 그런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지난해 9월 서울 가락동 시장에서 열린 '요리가무' ⓒ정시내

 

요리하며 춤추며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Slow Food Korea)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와서 보니 이 바닥에 젊은 친구들이 참 드물었다. 더 재미있게, 더 쿨하게 우리 세대의 코드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지 않으면 큰 변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흙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태적 감수성이 살아 있는 사람, 느리고 귀찮더라도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즐기고 타인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 소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이 세상에 작지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닭과 치킨의 사이'를 고민하며, 그 과정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돕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나누는 젊은 친구들이 모여 무언가 작당할 수 있게 작년에 '한국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Slow Food Youth Network Korea)를 시작했다.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는 젊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활동이다. 이들이 바로 앞으로의 농부이고, 요리 사이고, 유통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는 미래의 슬로푸드 운동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 활동 중 하나를 소개하면 판매 가치가 떨어진 농산물, 한마디로 버려진 농산물을 이용해 요리 파티를 여는 것이다. 먹을 수 있지만 버려지는 농산물은 대체로 급락한 가격 때문에 농부들이 제값을 받을 수 없어 밭을 통째로 갈아엎거나, 색이나 모양, 크기가 빼어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 대형마트에서 진열 기한이 지난 것들이다. 

 

▲ 2014년 '요리가무' 포스터.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

'요리가무'라 부르는 이 파티에서는 팔지 못해 버려지는 농산물들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 춤추고 싶어지는 음악을 곁들이고 대량의 버려지는 재료들을 손질해 만든 맛있는 식사 한 그릇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준다. 이 재료들이 길러지고 버려지기까지 물, 석유, 미생물, 땅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가 낭비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들이 버려지고 있는 안타까운 사실을 즐겁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이 행사는 작년 9월 가락시장에서 '요리가무'를 즐기며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지구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음식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중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다. 음식 낭비는 단순히 '아까운' 것을 넘어 이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을 반영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길러져 식탁에 올라오는지 관심 가질 수 있도록 새롭고 즐거운 방법을 이리저리 찾고 있는 중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또 하나, 슬로푸드 운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라져가는 종자와 음식을 지키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 많은 농산물들이 낭비되는 한편, 축산에 필요한 사료를 위해 유전자조작(GMO) 곡물이 대량으로 생산된다. 거대 기업은 이윤을 위해 씨앗을 독점한다. 그 씨앗은 자가 채종해 대물림되기 힘든 씨앗이라서 다음 해 다시 심으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 모든 먹을거리의 시작인 씨앗이 독점되어 식량 주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말이다. 처음엔 제대로 안 자라지만, 그 씨앗을 해를 거듭 해 심으면 수십 년 후에 토착화돼 다시 온전한 씨앗이 된다. 그래서 슬로푸드 운동에서는 '토종씨앗 지키기'를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는 앞으로 청년, 요리사, 농부, 전문가, 유통인,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로 진짜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을 계속하려고 한다. 즐겁고도 좋은 뜻이 있는 이 길에 더 많은 청년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묻곤 한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 하는 질문이다. 나에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먹기 위해 산다고 대답한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만큼 우리에게 잘 먹는 행위는 큰 위로와 행복을 가져다 주곤 한다. 흔히 말하듯 모두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 부끄럽게 다리를 꼬고 있는 삼계탕을 먹게 된다면, 혹은 시원한 맥주와 함께 치킨을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생각에 잠겨보자. '닭과 치킨 그 사이'에 대해….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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