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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문화에 맞서는 슬로푸드운동

김종덕(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 많은 사람들이 슬로푸드운동을 패스트푸드의 반대인 슬로푸드를 먹기 위한 운동으로 알고 있지만, 슬로푸드 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슬로푸드를 넘어선다. 슬로푸드운동은 현대사회의 빨리 빨리 문화에 맞서 그러한 문화의 대안인 슬로문화를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현대사회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속도다.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작동하면서 시장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빨리 빨리를 중시하고 있다. 속도 문화가 경제부문은 물론 나아가 사회의 전 분야에 확대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빠른 속도가 가치를 인정받는 상품 이 되고 있다. 공산품으로는 컴퓨터, 자동차, 고속철도, 초음속비행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가축의 사육기간도 성장촉진제 이용, 고급사료 등으로 인해 단축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조립라인의 도입으로 단시간에 보다 많은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대형 마트 등에서는 바코드 시스템을 통한 판매, 매장관리로 빠른 업무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거의 모든 사무실에서 컴퓨터 등을 이용한 빠른 일처리가 일상화되었고, 우편을 대체한 이메일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곳곳에 전달된다. 식생활에서도 속도가 중시되고, 확산되고 있다. 빠른 조리가 가능한 인스턴트 및 가공식품이 식탁을 채우고,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드라이브 트루가 생겨났다.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속도에 대한 추구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 정당화되고 있다.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음식을 효율적으로 빨리 공급하고, 식사비용과 시간과 맛을 예측할 수 있고, 식사비용 등을 계산가능하게 하며, 노동을 자동화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사회의 전 영역에 나타나는 현상을 사회의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 of Society)라고 지칭했다.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사회를 비롯해서 전 세계의 더 많은 부문들(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현대는 맥도날드화의 사회라 할 수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전 분야에서 빠른 것이 선호되고, 속도 문화가 현대인의 생활을 지배하게 되면서 현대의 속도문화에 반기를 들고, 슬로문화를 지향하는 슬로푸드운동이 생겨났다. 슬로푸드운동은 1986년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와 그의 동료들은 패스트푸드업계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로마의 스페인광장에 진출하자 음식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소멸시키는 것을 대항하여, 식사,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들은 미국의 패스트푸드 진출과 더불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미국의 천박한 노동문화까지 이탈리아에 유입될 것을 우려했다. 슬로푸드운동은 1989년에 파리에서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국제적인 운동이 된다. 이 시기에 이 운동에 국제적인 관심이 모아진데 는 영국에서 발병한 광우병이 작용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의 내장을 먹여 생긴 광우병도 소를 빨리 키우기 위한 속도문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1989년 11월 9일 프랑스 파리의 코믹오페라 극장에서 채택된 슬로푸드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산업문명의 이름하에 전개된 우리 세기는 처음으로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졌고, 이후 기계를 생활모델로 삼고 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으며, 우리의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즉 음흉한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를 굴복시키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서 사람은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보편적인 어리석음인 빠른 생활에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 만족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미 확인된 감각적 즐거움과 느리며 오래가는 기쁨을 적절하게 누리는 것은 효율성에 대한 흥분에 의해 잘못 이끌린 군중에게서 우리가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고,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진취적인 해답은 슬로푸드이다. 진정한 문화는 미각을 낮추기보다는 미각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경험, 지식, 프로젝트의 국제적인 교환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슬로푸드는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 슬로푸드는 그것의 상징인 작은 달팽이와 함께 이 운동이 국제 운동으로 나아가는데 도울 능력을 갖춘 다수의 지지자를 필요로 한다." 이 선언문에서는 현대문명을 속도전쟁으로 보고, 패스트푸드도 생산성 향상이라는 속도 전쟁의 산물로 보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처음에는 음식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하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 그리고 미국의 천박한 노동문화에 대한 반대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그 운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생물다양성의 보호, 지역 미각의 보호, 지역 전통 음식의 보전, 유전자 조작 반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적인 운동이 된 슬로시티운동도 슬로푸드운동에서 파생되었다. 오늘날 슬로푸드운동은 전세계에 153 개회원국, 10만여 명의 회원, 1,300개의 지부(Convivium)가 설치되어 있는 국제적 운동이 되었다. 2000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슬로푸드운동은 현재 10개가 넘는 지부가 설치되어 활동하고 있고, 사단법인 슬로푸드문화원은 슬로푸드 국가위원회에 준하는 자격을 인정받아 이 운동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리솜, 201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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