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통영 추도에 갔다가 섬 노인이 끓여 준 시원한 국물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 먹었던 시원한 국물이 ‘미기탕’이다. 심란했던 마음을 달래고 속을 풀어주면서 진정시켜줬던 탕이었다. 미기는 메기를 이르는 통영말이다. 전라도에서는 물메기라고 한다. 사전에는 ‘꼼치’로 등록되어 있다. 쏨뱅이목 꼼치과 바닷물고기이다.
그때 차가운 바닷바람과 따뜻하고 깔끔한 국물이 몸과 마음에 쌓인 찌꺼기를 훑어냈던 것 같다. 물론 입맛에 맞지 않았다면 그런 느낌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맛으로만 혹은 몸에 좋은 영양식으로만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힐링푸드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음식이다.
혀끝 달콤함으로 판단할 수 없다. 식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져 식탁에 올라왔는가. 그 요리를 누가 무슨 생각으로 만드는가. 이 모든 것을 살펴보아야 힐링푸드를 말을 할 수 있다. 제철에 생산된 맛좋고 신선한, 깨끗한 자연에서 인공이 아닌 자연적으로 성어로 자란 어패류를 적절한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힐링은 나만 내 몸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를 둘러싼 관계의 힐링도 이루어져야 한다. 물메기가 사는 바다, 물메기를 잡는 어부, 어부가 사는 어촌과 어촌문화, 물메기로 요리를 하는 요리사, 그 요리를 먹는 소비자에 이르는 관계도 건강하고 지속가능하며 힐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음식을 슬로푸드라고 하고, 바다음식을 슬로피쉬라고 한다. 섬에서 먹었던 미기탕이 그런 음식이었다. 그 뒤로 가끔 겨울철이면 미기탕 생각이 나서 통영에 간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밥상이 그랬다. 섬길을 걷다 주민들에게 어쩌다 이런 밥상을 받으면 감동이다. 혀끝이 아니라 아니라 몸에 새겨진다. 그것이 힐링푸드이고 슬로푸드다. 요즘 미기가 제철이다. 그런데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먼 바다에서 큰 배들이 큰 그물로 잡는 통에 내만까지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도 들린다. 대구 빈자리를 채우며 남해안 겨울여행객 허한 속을 달래줬던 미기탕도 사라질까 걱정이다. 추도에서 받았던 그 밥상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