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슬로청춘에서 진행한 플로깅(plogging)*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참가자에게 슬로푸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식생활에서 Good, Clean, Fare한 것을 지향하는 철학이자 운동이라 설명한 뒤 불현듯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실천하고자 하는 Good, Clean, Fare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이다.
*플로깅(plogging) :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
이를 구체화를 위해서 청년들이 책을 매개로 슬로푸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모임 중 도서 ‘제3의 식탁’ 읽기의 연장선으로 다큐멘터리 Seaspiracy (씨스피라시) 를 접했다. 영화는 상업적 어업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첫째는 조업 관련 쓰레기와 남획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업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 문제다. 두 가지 문제 모두 심각하지만 나에게 더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인권에 관해서 였다. 나는 대형마트에 판매하는 칵테일 새우를 볼 때마다 미간을 찡그렸다. 먹기 좋게 손질된 새우를 만원 대에 판매하기 위해 이름 모를 타국의 누군가, 특히 어린 아이가 착취당하는 장면이 겹쳐져 보였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이 태어난 국가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한국에서 내가 태어났고, 생활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고통과 나의 편의를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업에서 자행되는 노동 착취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최소한의 공정함이 지켜진다고 믿었던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공익법센터 ‘어필’을 통해 한국 이주 어선원의 이야기를 접했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주 어선원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하고 말이다.
*이주 어선원 : 한국으로 이주해 어선의 선원으로 일하는 사람
잠이 많은 내가 하루 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나머지 시간은 일만 한다. 나는 매일 욕을 듣고 가끔 맞기도 한다. 한국 선원은 생수를 지급받지만 나는 바닷물을 담수로 바꾼 물을 마셔야 한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한국 선원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 처음 원양어선을 탔을 때 월급이 5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고향에 가고 싶고 엄마가 보고 싶다. 하지만 배를 떠날 수 없다. 한국에 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수 백만원의 보증금을 준 상태다. 심지어 여권, 외국인등록증, 통장도 내 손에 없다. 선장이 맡아준다는 명목으로 가져가 버렸다. 매일 눈 뜨고 일어나 죽을 만큼 일하고 죽지 않을 정도의 생활을 이어간다.
부산에서 태어난 나의 유년 시절 밥상에는 유독 생선이 많이 올라왔다. 구이, 회, 조림, 찌개 속 생선은 그저 뼈가 있어 먹기 불편하지만 맛있는 반찬일 뿐이었다. 그 생선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고 궁금해하지 않았다. 무지했기에 수천, 수만 번의 식사에서 나는 그들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단지 ‘맛’ 으로만 평가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죄가 되기도 한다. 나의 소비가, 나의 한 끼 식사가 무엇에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너무나도 몰랐다. 한 번도 낚시를 해보지 않은 내가 생선과 해산물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건 누군가 생산, 유통의 과정을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그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길 바란다. 공익법센터 ‘어필’을 통해 이주 어선원 관련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탄원서를 제출 할 수 있다. 이주 어선원이 공정한 최저임금을 받고 노동 시간과 항해 시간이 너무 길지 않은 환경에서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글 ㅣ 슬로청춘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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